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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총서와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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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도시 부산을 안내하다-일제강점기 부산안내』(최인택 번역, 경인문화사, 2020), 연구소총서3

일제강점기 한국관광지도를 번역하다.
일제강점기에 제작되고 유포된 한반도 관련 관광안내서는 경성, 평양, 원산 등 대부분 철도가 부설된 중요한 거점지에서 발행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관광안내서와 더불어 팸플릿 형식으로 구성된 관광명소와 역사유적지가 조감도로 그려진 여행안내도, 사진그림엽서, 사진첩, 관광지도 등도 발행되었다. 이는 제국 일본이 관광을 통한 식민체제의 선전과 일본의 팽창을 홍보하면서 역사적 깊이를 갖는 새로운 영토 조선에 대한 이국적 풍경을 호기심 가득한 관광자원으로 획득하고 이것을 기반으로 경제적 활성화를 통해 식민지경영의 일환으로 삼고자 했다. 안내서에는 주요 관광지를 엮어 유람코스를 만들고 그곳으로의 접근방법, 숙박시설, 유흥시설, 요금 등 상세한 설명을 곁들이고 관광지도를 삽입하여 상당히 실용적인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당시 ‘관광의 대중화’에 견인차 역할을 하였음은 물론이다.

관광안내서에서 일본의 식민지지배에 관한 심리와 당대 사회 변화를 볼 수 있다.
당시의 각종 안내서에는 식민지지배의 성과로 포획된 ‘신문명 일본’과 역사적 유적들에 투영된 식민지 조선의 ‘정체된 고귀한 야만’이라는 역학적 구도가 암암리에 구도화 되어 있음도 살펴 볼 수 있다.
본 역서에서 다룬 ?부산안내?(원제목)는 총 4종류이나 총독부 철도국이 발행한 1929년, 1930년, 1932년의 3종류와 부산관광협회에서 발행한 1936년 1종류이다.
앞의 총독부 철도국이 발행한 ?부산안내? 3종류는 내용 상 커다란 차이는 없지만 각종 통계, 전차, 자동차, 기차, 배편 등의 운임에 차이가 있어 당시의 물가나 교통망, 인구 등의 변화를 살펴 볼 수 있다. 또한 미세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서술내용에 약간의 차이들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1929년 판 ‘절영도(지금의 영도)’ 설명 내용 중 “국유의 목장이 있었기 때문에 속칭 마키노시마라 불리고 있다”라고 되어 있지만, 1930년, 1932년판에는 “이왕가(李王家)의 목장이 있었기 때문에 속칭 마키노시마라 불리고 있다”고 기술되어 조선의 왕조를 비하하는 형태로 소개되어 있다.

왜 부산인가?
조선말 첫 개항지였던 부산은 일제강점기의 시작이자 마지막 지점이라 할 수 있는 굴곡의 역사가 남아있다. 한일병합 이전 이미 일본전관거류지가 만들어지고 조선을 식민지화하기 위한 제국 일본의 전초기지로서 대륙침략의 발판을 마련한 곳이다. 현재에도 많은 역사유적이나 유물 등 도처에 흔적이 남아 다크투어리즘(Dark Tourism), 역사투어리즘(History Tourism)의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일제강점기 해주구세요양원의 결핵퇴치운동 연구』(신동규 저, 경인문화사, 2020), 연구소총서1

본서는 한국에서 태어난 캐나다 의료 선교사 셔우드 홀(1893~1991) 박사가 1928년에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결핵전문 요양병원인 황해도 해주구세요양원(海州救世療養院)에서의 결핵퇴치운동, 나아가 결핵기금 확보를 위해 홀 박사가 발행했던 크리스마스 씰(Christmas Seals), 그리고 여기에 관련된 인쇄홍보자료들이 어떠한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고찰한 것이다. 그간 해주구세요양원을 설립한 셔우드 홀 박사에 대해서는 박사의 자서전 ?닥터 홀의 조선회상?이나 한국 최초로 남대문 도안의 크리스마스 씰을 만들었다는 점에서만 널리 알려져 있고, 해주구세요양원 자체에 대한 역사적인 검토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때는 ‘망국병’이라고도 불렸던 결핵의 퇴치를 위해 일생의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헌신한 박사의 노력과 열정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 해주구세요양원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서 상당히 늦기는 했지만, 지금이라도 재평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요양원의 결핵 관련 자료들은 지금까지 소개가 안 되거나 쉽게 접할 수 없었던 희소성의 가치가 높은 자료들이고, 마니아적인 특수 자료들이기에 연구방법론과 함께 연구의 한계성도 있을 수 있지만, 이것이 홀 박사와 해주구세요양원의 역사적 의미를 보다 선명히 부각시켜 주리라 생각한다.

『1910년 일본인이 본 한국병합-조선사정과 조선사진첩』(신동규 번역, 경인문화사, 2020.8), 연구소총서2

본서는 이데 마사이치(井手正一)가 일제의 한국병합을 기념하여 출판한 『한국병합기념첩(韓國倂合紀念帖)』(駸々社, 1910)을 번역한 것이다. 『한국병합기념첩』은 상·하권 합본으로 상권에는 「조선사정」, 하권에는 1910년 이전 한국의 승경(勝景)과 풍속(風俗) 사진 183장을 수록하고 있다.
이 책은 당시 일본인들이 한국병합을 어떻게 생각해왔고, 또 어떠한 의도에서 식민정책을 입안했으며, 나아가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얼마나 왜곡된 역사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잘 보여주는 자료이기도 하다. 또한, 이 책의 제2부에 수록되어 있는 근대 한국의 사진 183매는 희귀 사진들이 포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병합 이전 우리나라 민중들의 삶과 생활방식 또한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어 학술적 가치로서도 매우 귀한 자료이다.
이 책의 내용은 언뜻 보면 1910년 한국병합 이전의 시대적 상황, 당시 한국의 정치, 제도, 문화, 사회시설과 농공수산업을 비롯해 풍속과 풍습 등 전반에 걸쳐 일정 부분을 파악하고 있는 것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문명과 비문명이라는 이분법적 시각에서 한국에 대한 멸시관, 그리고 한국병합의 당위성을 왜곡된 표현으로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본서는 제국주의와 군국주의, 만세일계 황국의 신민이라는 아둔한 환희 속에 빠져있던 일본인들이 얼마나 일본 우월적이고 일본 중심적인사관에 자만하고 있었는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자료들이다.
본서는 크게 두 가지 점에서 그 편찬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첫째는 한국병합이 이루어짐에 따라 일본의 외지(外地)가 되어버린 조선에 대한 식민지 정책의 대안과 침탈의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고, 둘째는 병합 후에 조선으로 이주하는 일본인들에게 조선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을 제공함으로써 일본제국주의 침탈을 위한 첨병 역할과 함께 조선인에 대한 동화정책의 강화라는 의미가 깊이 내재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상권(제1부)의 「조선사정」에서는 한반도의 역사에서부터 기후, 토지, 행정구역과 도시의 상황, 교통, 조선의 제도, 사회조직, 조선인의 기질, 건축, 풍속 등의 문화 전반을 비롯해 농업·상업·공업·임업·수산업·광업 등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를 개괄하고 있다.
본 번역서를 통해 조선을 지배하고자 하는 일본의 야심과 본서에 수록되어 있는 183장의 사진을 통해 그 시대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본서가 시대적으로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더 자세히 알고자하는 독자들에게도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길 바란다.

『일제침략기 사진그림엽서로 본 제국주의의 프로파간다와 식민지표상』(민속원, 2019), 연구원 공동집필

  본서는 2016년 11월부터 2018년도 10월까지 2년간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기초 연구사업 ‘일반공동연구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일제침략기 사진그림엽서(繪葉書)로 본 제국주의의 프로파간다와 식민지 표상」이라는 과제의 논문 성과물을 모아 동아대학교 ‘역사인문이미지 연구소’의 개소 기념으로 발행한 연구서이다. 연구 내용은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에 발행된 사진그림엽서(관찬엽서와 사찬엽서 포함)를 중심으로 일본이 제국주의를 어떠한 형태로 선전하였으며, 또 식민지 조선의 실상이 어떻게 왜곡되어 표상화되었는지에 대한 분석이다. 6명의 연구자가 각기 역사(대한제국․조선총독부), 신사와 천황, 전쟁과 군대, 민속과 풍속, 사회와 관광, 문학(시․가요․동요․민요) 등 6개 분야를 분담하였으며, 1년에 1편씩 2년간 총 12편의 논문을 결과물로 학술연구재단에 제출하여 공동연구를 마무리하였다. 본서에는 인용한 엽서의 저작권이 확인되지 않는 1편을 제외하고 11편의 논문을 수록하고 있는데, 본서에 수록할 때 논문 명칭을 약간 수정하였으며, 또 각기 논문의 특성상 편집 체제를 통일하지 않았음을 밝혀둔다. 연구과제 원래의 논문명과 게재 학술지는 아래와 같다.


신동규(역사)

  • 1년차: 대한제국기 사진그림엽서로 본 한일병탄의 서막과 일본 제국주의 선전(동북아문화연구51, 동북아시아문화학회, 2017), 본서 제1장

  • 2년차: 조선총독부의 ‘시정기념 사진그림엽서’로 본 식민지 지배의 선전과 왜곡(일본문화연구67, 동아시아일본학회, 2018), 본서 제2장

한현석(신사·천황)

  • 1년차: 사진그림엽서로 본 국가신도(國家神道)의 선전과 실상-조선신궁의 사례를 중심으로(일본문화연구63, 동아시아일본학회, 2017), 본서 제3장

  • 2년차: 일제침략기 사진그림엽서로 본 천황가의 이미지와 제국주의 선전(일본문화연구67, 동아시아일본학회, 2018), 본서 제4장

황익구(전쟁·군대)

  • 1년차: 사진그림엽서로 본 러일전쟁과 프로파간다(일본문화연구63, 동아시아일본학회, 2017)

  • 2년차: 일제침략기 군대만화엽서를 통해 본 군대의 홍보와 병영생활(일본문화연구67, 동아시아일본학회, 2018), 본서 제5장

최인택(민속·풍속)

  • 1년차: 일제침략기 사진·그림엽서를 통해서 본 조선의 풍속 기억(동북아문화연구51, 동북아시아문화학회, 2017), 본서 제6장

  • 2년차: 일제침략기 사진그림엽서를 통해서 본 기생기억(일본문화연구67, 동아시아일본학회, 2018), 본서 제7장

조정민(사회·관광)

  • 1년차: 식민지 시기 사진엽서 경성백경의 공간과 서사 전략(일본문화연구63, 동아시아일본학회, 2017), 본서 제8장

  • 2년차: 일제침략기 사진그림엽서로 본 부산 관광의 표상과 로컬리티-지배와 향유의 바다(일본문화연구67, 동아시아일본학회, 2018), 본서 제9장

황진(문학)

  • 1년차: 일제침략기 사진그림엽서로 본 ‘조선적 정취’의 생성과 소비-조선정시를 중심으로(일본문화연구63, 동아시아일본학회, 2017), 본서 제10장

  • 2년차: 일제침략기 사진그림엽서로 본 조선의 민요와 동요-“아리랑엽서”를 중심으로(일본문화연구67, 동아시아일본학회, 2018), 본서 제11장

  이렇게 사진그림엽서를 역사학 연구의 기초 사료로서 활용하게 된 계기는 연구팀의 일원인 필자가 수십 년간 사진그림엽서를 수집해왔고, 또 이를 역사학 연구의 소재로 삼아 2014년부터 몇몇 연구자들과 학술적 논의를 거듭한 결과이다. 필자의 전공은 일본 근세사 이지만, 이렇게 근대 자료에까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시절부터 취미로 우표와 크리스마스 씰, 또 이와 관련된 근대시기의 사진그림엽서, 사진첩, 일제강점기의 인쇄물 등을 수집해왔기 때문인데, 최근에는 크리스마스 씰과 관련하여 최초의 결핵요양원인 해주구세요양원, 사진그림엽서와 우편사(郵便史) 등에 관한 연구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간 취미로 수집한 자료들이 우연치 않게도 연구의 중요한 자료들이 되고 있다.

  특히, 일제침략기의 사진그림엽서는 5만점 이상을 수집하고 있으며, 이중에는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거나 알려지지 않은 희귀한 사진그림엽서만 수천 종 이상이 포함되어 있다. 당시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관제사진그림엽서는 거의 대부분 수집하였고, 민간에서 발행된 판매용의 사제그림엽서는 수적으로 정확한 파악이 불가능하지만, 상당 부분을 수집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에 필자는 일개인이 수집하여 소장한 자료라도 객관적인 역사 복원과 학술연구의 발전을 위해 공개하는 것이 연구자로서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하여 비록 수집으로 수십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기는 했지만, 공동연구를 위해 6명의 공동연구원들에게 제공․공유하겠다는 제의를 하였다. 이에 본 연구팀에서는 이들 엽서를 본 연구의 중요한 기본 자료로 활용함과 동시에 본 연구 과제를 통해 일반에 모두 공개하고, 나아가 국내의 관련 학술연구에 파급효과를 도모하기 위해 논의해온 결과물이 바로 본 연구서이다.

  사진그림엽서가 언제부터 발행되었는지 단적으로 언급할 수는 없지만, 대한제국에서는 1900년 5월 10일에 최초의 관제엽서가 발행되었으며, 1900년을 전후해 발행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이 시기는 일본 제국주의의 침탈이 강화되는 시기였고, 1905년 4월 1일에는 일본과 강제적인 「한국 통신기관 위탁에 관한 취극서(取極書)」(통칭 ‘한일통신합동조약’으로 불리나 명확히 조약은 아님)가 조인됨에 따라 대한제국의 통신․우편 행정권이 거의 일제에 의해 통제되고 있었다. 때문에 일본적인 시각에서의 사진그림엽서가 발행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른바 ‘알레베크 엽서’라고 불리는 사진그림엽서에서도 확인되듯이 1900년을 전후한 시기에 프랑스를 비롯한 외국인 사진작가나 선교사들에 의한 엽서 제작도 이루어지고는 있었지만 이는 극히 일부였다.

  한편, 사진그림엽서는 당대의 시대상을 대변해주는 중요한 사료적 가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간 엽서의 이미지 분석이나 역사적 고찰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본 연구에서와 같이 일제침략기의 사진그림엽서를 공동연구의 소재로 삼아 종합적으로 분석․고찰한 연구는 전혀 없었다. 물론, 우편사 측면에서의 연구를 비롯해 낱장 엽서의 사진에 대한 캡션 위주의 도록 발행은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보이고 있지만, 양국 관계 속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시각, 역사의 기억과 표상을 검토한 연구는 없을 뿐만 아니라, 엽서에 활용된 수많은 도안 이미지에 대한 실증적 연구조차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들 사진그림엽서는 당시 조선과 일본에서 판매되었던 것으로 제국주의 일본에 의한 조선의 왜곡된 선전과 홍보는 일본인과 조선인들에게 굴절된 한국관을 이식시켰고, 나아가 일본의 식민지배 합리화를 부추겨 나갔다. 이에 본 연구팀에서는 사진그림엽서를 통한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또 다른 시각에서의 분석이 절실하다는 것에 동감하고, 다음과 같은 목적과 필요성을 가지고 본서에 수록된 연구들을 추진해왔다.

  첫째, 지금까지 대한제국기의 사진그림엽서는 국내에서 공개된 것이 극히 적고, 100여 년 이상이 경과한 자료라는 희귀성과 1장에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고가 수집품으로서의 가치만이 중요시되어 거의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 자료를 역사연구의 토대 자료로서 수집․정리․분석하여 공개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또 사진그림엽서가 단순히 역사연구의 부수 자료로만 이용되어 왔기 때문에 본격적이고 전면적인 검토와 분석을 통해 학술적 연구의 기초자료로 삼아야 할 필요성이 존재한다.

  둘째, 일제침략기에 셀 수 없을 만큼 발행된 사진그림엽서는 당시 제국주의 일본이 한국에 대해 가지고 있던 다양한 이미지를 명확히 분석할 수 있는 제1급의 사료로서 이들 엽서를 통해 어떻게 일본인들이 제국주의를 선전․홍보했고, 또 이러한 프로파간다가 어떠한 이미지로 왜곡되어 표상화되었는지를 규명해보고자 했다.

  셋째, 일제침략기의 사진그림엽서의 제작에는 다양한 이미지 도안들이 사용되고 있는데, 과연 이 도안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의미는 무엇인지, 또 각기의 도안들이 상호 결합하여 어떠한 형태로 제국주의를 선전하고 그 모순을 합리화시키고 있었는가를 밝혀보고자 한다. 특히, 대한제국기의 엽서 500여장과 식민지기의 ‘시정기념엽서(始政紀念葉書)’는 박물관에서조차 소장하지 않은 희귀자료들로 한국병합의 불법적이고 구조적인 모순은 물론 식민지기의 왜곡된 조선이미지를 보다 입체적이고 실증적으로 규명할 수 있는 기초 자료가 될 것으로 사료된다.

  위와 같은 연구 목적과 필요성을 가지고 본 연구팀에서는 제1단계로 위에서 언급한 한국연구재단의 공동연구를 시작하여 본 연구서를 발간하게 되었고, 또 그 연장선상에서 2017년부터는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진흥사업의 토대연구로서 「일제침략기 한국 관련 사진그림엽서(繪葉書)의 수집·분석·해제 및 DB 구축」이라는 연구 과제를 3년간의 계획으로 수행 중에 있다. 이 연구 사업이 종료되면 6,900여 매 이상의 한국 근대사 연구에 귀중한 사진그림엽서가 학계와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데이터베이스는 사진그림엽서의 이미지 앞뒷면(600DPI), 엽서 봉투, 원문 텍스트, 번역문 텍스트, 발행처, 인쇄처, 키워드, 해제 등 26개 항목의 메타데이터를 상세히 작성하고 있다. 1900년 전후 무렵부터 발행된 사진그림엽서는 이미 100여년 이상이 경과한 인쇄 자료로서 보존성이 약하며, 또 일본이나 국내의 박물관에서조차 쉽게 열람하기 어려운 자료일 뿐만 아니라 개인이 소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망실할 우려가 많다. 따라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함으로써 역사자료의 보존 측면뿐만 아니라, 이를 공개함으로써 관련 학술분야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고, 동시에 연구 과제의 사회적 환원이라는 측면에서도 가치 있는 연구가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또한, 사진그림엽서와 같은 역사 관련 이미지에 대한 연구의 폭을 넓히고, 역사 인문학의 발전과 사회적 기여도를 높이기 위해 필자는 2019년 5월 1일에 재직하고 있는 동아대학교에 「역사인문이미지연구소」를 설립하였다. 본서는 바로 연구소 개소를 기념하여 기획된 것이며, 아직은 어정대는 출발 단계이지만, 필자가 수집해왔던 동아시아 근대시기의 사진첩, 고지도, 귀중 책자와 인쇄물, 통감부․조선총독부 발행의 각종 홍보인쇄 자료, 조선안내, 팸플릿, 관광안내서, 조감도, 철도국 자료, 일본군 자료, 항공 자료, 일본의 식민지 통계 자료, 각 시도군 관청의 인쇄 자료 등을 포함해 앞으로 역사 이미지와 관련된 다종다양한 자료들을 수집․정리․분석하여 새로운 학문의 장을 열어나가고자 한다.

  끝으로 본서를 출간하는데 앞서 다른 무엇보다도 한국연구재단 공동연구의 연구책임자로서 연구팀을 격려하며 끝까지 이끌어주신 동아대학교의 최인택 선생님, 아낌없는 조언과 격려를 해주신 숙명여자대학교의 박진우 선생님과 동국대학교의 서민교 선생님, 엽서 연구의 현황과 방법 등 많은 조언을 해주신 서울시립대학교의 권혁희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그리고 연구팀의 일원으로서 현재는 부경대학교에 계신 조정민 선생님, 동아대학교의 한현석 선생님과 황진 선생님, 청암대학교의 황익구 선생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더불어 흔쾌히 출판을 허락해주신 민속원 홍종화 사장님, 편집에 힘을 써주신 편집부에도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019년 7월 31일

공동저자 대표 신동규

연구원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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